출판할 것인가 도태될 것인가?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에는 너무도 유명한 대사가 나옵니다. 바로 “사느냐 죽느냐이것이 문제로다”입니다. 영어로는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입니다. 이는 우유부단한 햄릿의 성격과 그가 처한 진퇴양난의 상황을 함축적으로 드러내주는 말입니다. 그런데 학계에도 유명한 불문율이 있습니다. 바로 “publish or perish”, 한국말로는 “출판 또는 도태”를 의미합니다. 이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습니다. 연구 결과를 출판 하면 살아
남고, 그렇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미 연구자는 출판으로 말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출판을 하여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는 연구자는 이미 학자로써 생명을 잃은 것과 다름없습니다. 최근 이러한 “publish or perish”의 경향이 학계 전반에 걸쳐 더욱 강화되고 있습니다. 박사 과정 학생도 SCI급 저널에 자신의 논문을 몇 편 이상 출판해야 하고, 임용된 조교수들도 테뉴어 직을 얻기 위해서 할당된 논문 출판 기준을 충족해야 합니다. 게다가 테뉴어 교수들도 더욱 가중되는 출판의 부담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테뉴어 교수일수록 학교에서 정책적, 행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는데, 저명한 저널에 논문을 출판하지 못하면 소속 학교에 대한 정부의 지원금, 외부 연구 기금 등의 손해가 발생하게 될 수 있습니다.
–일종의 악순환
“publish or perish” 룰의 애초 취지는 좋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를 너무 강조한 나머지 부작용이 생기고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예산 관련 압력에 처한 기관들은 예산을 따내기 위해서 높은 외형적 지표를 달성할 수 있는 저명 저널에 논문을 출판하는 것을 우선하시 할 수 있으며,전문 분야의 다른 저널로 가도 될 논문이 저명한 일부 저널로만 몰리는 것입니다.해당 저널 측에서는, 투고 논문의 양이 급증함에 따라 논문 심사 비용이 크게 증가하게 됩니다. 또한 약탈적 저널 등 새로운 저널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기존의 저명한 저널들은 자신의 영향력 지표 및 랭킹과 관련된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불필요한 언론 홍보나 인용도 체크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가혹한 결과
학계의 출판 만능 주의가 지속된다면, 학계 전체의 신뢰성과 무결성이 심각히 손상될 것입니다. 이미 그 결과는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1) 살라미 분책술(Salami Slicing): 살라미는 얇게 잘라서 먹는 이탈리아 소시지를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연구자들은 자신의 연구 결과를 살라미 소시지처럼 나눕니다. 즉 출판 확률을 높이기 위해 논문을 여러 부분으로 나누어 여러 저널에 투고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출판이 승인된 논문도 반쪽 짜리 논문이 되고 맙니다.
2) 저자 끼워 넣기: 연구자들은 실제 연구에 별로 기여를 하지 않은 다른 연구자들의 이름을 논문의 공저자로 넣기 시작했습니다.이러한 바람직하지 못한 협업은 출판 업적을 서로 높여주는 방식입니다.
3) 출판 편향: 저널에서는 투고 승인 논문의 인용도를 높이기 위해 긍정적 결과를 보여주는 논문 위주로 게재를 승인 하고 있습니다. 이는 유사한 복제 연구의 증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4) 인용 강박증: 저널 측은 임팩트 팩터를 높이기 위해 인용도의 상승에만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연구 기관들도 성과 리뷰 및 테뉴어 임명을 위한 지표로써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상승된 인용도를 활용하게 됩니다.
5) 연구 무결성 손상: 피어 리뷰와 연구결과가 조작되고, 이해관계의 충돌 규정은 무시되어 연구 무결성(integrity)이 손상되고 맙니다.
–악순환 깨기
저작권(authorship)과 피어 리뷰에 있어 즉각적인 의사소통과 투명성을 보장할 수 있다면, 연구 품질 관련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을것이며, 연구원들의 연구 출판 환경을 회복해야만 지속 가능한 출판 행위와 출판의 품질을 보장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