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다 출판하고 알려야 하는가?
‘게재 또는 도태’의 학계 풍토에서, 연구자의 저명한 저널에 게재 횟수와 경력은 해당 연구자의 승진 및 생존에 결정적 영향을 끼칩니다. 연구 결과를 게재하는 것은 분명 권장할만한 일이지만, 어디까지나 게재는 좋은 연구를 전제로 합니다. 그게 아닌, 게재가 모든 결정의 중심이 되어 연구 환경이 돌아가게 된다면, 예기치 않은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신뢰도의 문제
어떤 연구 결과를 게재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결정은 2~3명의 피어리뷰어들의 공정하고 진실된 판단에 따라 좌우되고 있습니다. 즉, 피어리뷰어들은 연구에 대해 균형되고 객관적인 무결성의 입장을 견지해야 합니다.
그런데 최근 오픈엑세스 게재 추세는 논문 수속 수수비만 지불하면 거의 모든 논문을 출판하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추세에서 피어리뷰 절차가 유명무실해지고, 피어리뷰의 질이 제대로 유지되고 있는지에 대한 우려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이러한 논문들을 리뷰 필요성 조차도 심각한 의문에 휩싸이고 있습니다.
-모든 스캔들은 뼈 아프다
피어리뷰 과정에 대한 연구자의 인식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습니다. 논문 철회 비율이 증가하고 있고, 성공적인 게재를 위해 연구자들이 서로 공모하여 피어리뷰를 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으며, 심지어 가짜 학자들이 완전히 조작된 리뷰를 하기도 합니다. 피어리뷰 과정 자체에 대한 신뢰도가 심각히 저하되고 있는 것입니다.
대표적 스캔들은 2009년 영국에서 있었던 ‘기후게이트’ 스캔들입니다. 이스트앵글리아 대학 기후연구팀 연구자들이 자신들의 기후온난화 이론을 뒷받침하기 위해 세계 기온 데이터를 조작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입니다. 조작된 데이터를 사용하는 과정에 학자들이 직접 관여했으며, 피어리뷰 과정에서도 서로 공모하여, 완전히 가짜의 연구 결과가 발표된 것입니다. 이 사실도 내부 데이터 정보 유출로 인해 탄로난 것이었습니다.
-피어리뷰가 모든 것을 책임질 수는 없습니다
연구 논문이 저널로부터 철회되는 경우, 일반인이나 독자는 해당 저널에 대해 여러 의혹을 품기 마련입니다. 해당 연구를 한 연구팀이 다른 연구에서도 실수를 한 것은 아닌지, 해당 저널 측의 다른 게재 논문들에서도 유사한 리뷰 실수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해당 저널이 거대 출판사의 일원인 경우, 관련된 다른 저널들도 유사한 학문 부정행위에 연루된 것은 아닌지 등에 대한 의혹이 꼬리를 물고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는 결국 피어리뷰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불공정한 피어리뷰의 사례가 연구의 진실성(완벽도)을 해친다면, 왜 굳이 출판 절차를 지연시키는 피어리뷰를 유지하느냐는 것입니다. 또한 차라리 이럴 바엔 모든 논문을 다 게재하자고 하는 식입니다.
-극단적 선택보단 절충안을
논리적으로 봐도 모든 논문을 게재하자는 주장은 비현실적입니다. 결국에는 모든 연구의 질이 저하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널 측에서는 여전히 많은 논문 투고를 받고 있습니다. 극단적 주장이 현실화된다면, 임팩트팩터 문화는 어떻게 될까요? 그리고, 연구자들은 다른 논문을 인용하려고 할까요? 피어리뷰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아예 폐지하자는 주장은, 오류가 있는 교통신호등을 아예 없애자는 주장과 같을 것입니다. 피어리뷰 제도가 불완전하다면 최대한 투명하고 공정한 방향으로 개선하는 것이 더욱 현실적인 해결책일 것입니다.
극단적인 비평가는, 아예 문제가 되는 저널들도 다 폐지하자고 주장합니다. 저널을 통하지 않고 개별적으로 자신들의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독자들(일반인 포함)이 해당 결과를 평가하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 독자들의 신원, 자격 등이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연구 결과를 평가한들 얼마나 그 평가 결과를 신뢰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피어리뷰와 관련된 학계 내부의 혼란과 논란은 결국, 연구의 투명성과 진실성이 증가되는 방향으로 해결되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