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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과정 학생 절반의 위험한 정신건강

대학원생은 일반인들보다 더 많은 정신건강과 관련된 문제에 더 쉽게 노출된다. 사실 한국의 대학원생 문제만 생각해봐도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대학원생들에게 연구가 아닌 각종 잡무를 맡기거나 심지어 본인 자녀들의 숙제를 시키거나 연구를 대신하도록 했다는 뉴스는 이미 여러 번 접했을 것이다. 좋은 연구자로 성장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해서는 교수나 선배 혹은 연구교수의 하인처럼 취급을 받아 공분을 사기도 했다. 또한 연구비를 횡령하거나 부당한 지시를 시키는 등, 교수의 ‘갑질’에 대한 뉴스도 끝이 없다.

하지만, 대학원생들의 스트레스는 비단 이런 악독 교수의 경우에 미치지 않는다. 평범한 대학원생들도 연구성과에 대한 압박,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정신적 스트레스가 매우 높다. 학교 수업, 수업과제, 연구 발표, 학회, 과제, 과제 보고서 등 일은 끝이 없다. 심지어 이렇게 많은 일을 잘 해낸다 해도, 더 악화하는 학계 경쟁 속에 살아남아 취직 혹은 교수직에 들어가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워 보인다.

극심한 경쟁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

일도 많고, 교수의 절대 권력으로 부당한 일도 많이 겪으며 그렇다고 미래가 확실하지도 않고, 보수도 적은 대학원생들은 정신적인 문제를 더 많이 겪는다. 벨기에에서 실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대학원생들 – 주로 이공계 박사과정 학생들은 다른 고학력 인구보다 정신적 스트레스를 겪는 경우가 2배 이상 높다고 나타났다. 그리고 대학원생의 3분의 1은 정신장애를 겪거나, 정신장애를 겪을 위험도가 아주 높다는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또 미국의 애리조나 대학에서 실시한 자체 조사에 따르면 박사과정 학생들의 75% 이상이 같은 연령대의 사람들보다 평균 이상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단순히 왜 업무량,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이토록 대학원생을 괴롭히는 것일까? 이런 이유는 크게 업무에 관련하고, 조직 자체에 관련한 것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첫 번째로 업무와 관련된 요인이다. 벨기에에서 실시된 연구 결과의 경우, 대학원생들은 대학원에 입학하자 마자 같은 연구실 사람으로부터 혹은 교수의 학생들로부터 아주 다양한 기대 사항을 받게 된다. 이공계의 경우, 더 큰 랩 원으로서 실험을 수행해야 하는 역할을 해내야 하며, 인문계의 경우, 적절한 논의와 토의를 자발적으로 하며 자신의 이론을 구축해가야 한다. 대학원생 대부분이 이전 사회 경험이 없기 때문에 새로운 역할에 익숙해지고, 새로운 업무를 책임지는 과정이 힘들다고 느끼고 있다. 또한 대학원생은 항상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매우 큰 것으로 나타났다. 업무와 관련하여 이를 잘 수행하지 못할 경우 재정적으로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연구뿐 아니라 초기 학업을 병행해야 하는 점, 그리고 졸업 이후 취업과 관련한 좌절감 (원하는 자리가 없거나 경쟁이 극심하다거나) 혹은 보상에 대한 좌절감(돈을 거의 모으는 것 등)이 대학원생들의 정신건강을 위협하는 요인인 것으로 파악한다.

두 번째로 조직과 관련된 이유이다. 조직과 관련된 요인에는 경영전략, 적절한 업무량 분배, 심리적 안정 장치의 여부 등이 있다. 이러한 요인은 대학원생의 정신건강과 관련한 이유로 덜 주목을 받았지만, WHO는 조직적 요인이 오히려 정신건강에 매우 중요한 요인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더 많은 이공계 연구가 더 큰 규모의 팀워크를 수반하기에 조직과 관련된 이유는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교직원까지! 모두 정신적인 문제로 고통받는다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는다고 정신건강과 관련한 모든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는 없다. 안타깝지만, 박사과정뿐 아니라 포닥, 그리고 심지어는 교직원까지도 정신적인 문제로 일반인보다 더 고통받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앞선 벨기에의 연구 결과뿐 아니라, 하버드에서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경제학 박사과정 학생의 경우 전체의 약 18%가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포닥의 경우 박사과정 학생보다 더 심한 경쟁과 생산성과 성과에 대한 압박이 더욱 심한 것으로 나타나, 이들의 정신건강과 관련한 위기가 심각한 상태이다.

놀랍게도 교직원들도 엄청난 정신적 위협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성과에 대한 압박이 아주 심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특히 비전임 교직원이 그런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 실시된 이 연구는 학계 종사자인 교직원들의 약 43%가 가벼운 정신질환 증상을 나타내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시간의 강의 일정이 추가되면 약 1.7시간의 업무가 늘어나는데, 이는 강의뿐 아니라 연구 그리고 연구 성과까지 신경 써야 하는 교직원들에게는 살인적이다. 교직원들은 흔히 학생들의 방학 기간에 꽤 여유롭게 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이와 다르다. 한 학계 종사자는 트위터로 “학계 종사자들은 경영 방식에 의해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휴가를 학기 중에 갈 수 없고, 시험 기간에 갈 수 없고, 시험 채점 기간에도 갈 수 없으며, 내부 이사 회의나 교과목 개발 회의 기간에도 갈 수 없습니다. 결국 서류상에 연간 35일간의 휴가가 지급되지만, 실상 길어야 14일 정도밖에 쓸 수 없습니다.”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PI의 중요한 역할

학계에서 학생, 포닥, 교직원 모두에게 공통으로 나타나는 정신질환의 위험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앞선 연구 모두 PI 혹은 지도교수의 역할을 강조한다. 먼저 대학 혹은 연구 기관의 지도교수들에게 대학원 연구와 교육이 대학원생들의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교육을 할 필요성을 주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 경우, 교직원들이 대학원생들이 겪을 문제와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더 잘 이해하고, 학생들이 문제가 발생하거나 문제를 인식한 단계에서 적절한 조처를 할 수 있도록 돕기 때문이다.

고립된 이공계 연구 환경에서, 대학원생에게 “넌 혼자가 아니야”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도 아주 큰 힘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우울증과 불안 증상을 나타내는 대학원생들의 절반이 지도교수로부터 ‘진실한’ 멘토링을 받고 있지 않다고 응답했다. 또한 고민을 나누고, 생각할 대상이 있는 것만으로도 정신적 질환을 겪을 위험이 줄어드는 것에서, PI와 지도교수가 적절한 멘토링을 제공하는 것이 아주 중요함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정신건강의 문제를 오직 지도교수에게만 넘길 수는 없다. 지도교수 그리고, 연구 과정에서 실질적인 리더 역할을 맡는 포닥들도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고, 정신질환을 겪을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대학 혹은 단과 대학 내 정신 건강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고, 각 단과대뿐 아니라 학계 내에서도 포괄적인 정신 건강 지원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또한, 대부분의 근심과 걱정 불안 증세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서 나타나는 만큼, 학계에서 성공적인 취업 및 커리어 멘토링 프로그램을 유치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

연구 결과보다 정신건강을 먼저 챙겨야 한다

박사학위를 받기가 쉽지 않은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쉽지 않은 것이 꼭 해로울 필요는 없고, 박사학위를 위해 마음마저 해칠 필요는 더더욱 없다. 대학원생 또한 더 큰 연구팀의 중요한 일원이고, 이들이 연구 혹은 학계에서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또 대학원생, 포닥, 그리고 학교 교직원들의 정신건강은 연구 산업에 인력의 유입 문제와도 직결된다. 무엇보다 한 개인이고 사람으로서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많은 사람이 도움을 줘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연구를 더 잘하고, 더 좋은 과학자, 학자가 되기 위한 발걸음을 뗀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이상적인 공간과 시스템을 제공해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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