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스비어의 오픈 액세스 지연 전략

네덜란드 대학교들이 2014년과 2015년에 컨소시엄을 구성하여 대형 학술출판사인 엘스비어와 오픈 액세스 (Open Access) 관련 협상을 진행해 왔습니다. 협상의 주된 내용은 엘스비어가 보유한 저널 상의 논문들을 어느 정도나 오픈 액세스화 할 것이냐 였습니다.

오픈 액세스는 연구자들이 제약 없이 온라인 상에서 무료로 학술정보를 이용하게 하는 국제적인 운동입니다. 학술저널의 출판사들에게 상당한 비용을 지불하고 논문을 열람하는 것이 자유로운 학술연구에 장벽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2002년 기존 학술저널들의 이런 독점적 생태계에 불만을 가진 신진연구자들이 부다페스트에서 오픈 액세스 선언을 발표하면서 오픈 액세스 확산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기존 대형 학술출판사들 입장에서는 오픈 액세스가 마뜩하지 않습니다. 비용을 받으면서 제공하던 서비스를 무료로 볼 수 있게 한다면, 자신들의 수익에 악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오픈 액세스가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각 국가에서 압력이 거세지자, 마지 못해 그 흐름에 부응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오픈 액세스를 최대한 지연시켜 시간을 벌면서, 다른 방책을 마련하려고 할 것입니다.

실제로 앞서 말한 네덜란드 대학교 컨소시엄과 엘스비어간의 계약 내용이 노출되면서 엘스비어가 오픈 액세스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그리고 이를 지연시키기 위해 어떤 전략을 취하는지가 공개됐습니다.

수년 전부터 네덜란드 교육과학문화부는 공적 자금으로 지원받은 모든 연구논문은 공개적으로 열람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네덜란드 대학교들의 오픈 액세스 운동을 지원해 왔습니다. 그런데 대학교 컨서시엄 측과 엘스비어 간의 입장 차이로 협상이 난항을 겪었고, 엘스비어는 심지어 협상을 보이콧하겠다고까지 했습니다. 2015년 우여곡절 끝에 양측이 마침내 합의에 이르렀는데, 문제는 이 합의 내용이 공개되면서 엘스비어의 속내와 노림수가 공개된 것입니다.

합의의 내용은 일정 수의 오픈 액세스 논문을 출판하는 대가로 엘스비어 출판물들의 구독료를 일정 비율 올리는 것입니다. 즉, 2016년에 600개, 2017년에 1200개, 2018년에 1800개의 논문을 오픈 액세스로 출판하는 조건으로 엘스비어사 논문들의 구독료를 2017년에 2.5%, 2018년에 2% 인상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이를 계산해보면, 오픈 액세스 논문 하나에 대응하는 비용이 232.40 유로입니다. 그런데 이 합의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비용 보다는, 누가 어떤 저널에 출판할 수 있는가 입니다.

첫번째 이슈는 오픈 액세스 저널에 출판하기 위해서는 교신저자 (corresponding author)가 네덜란드 대학교에 소속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네덜란드 연구자들로만 구성된 경우는 관계없지만, 해외 연구자들과 국제적인 연구를 공동으로 하는 경우에는 불가능합니다. 이는 엘스비어가 가능한 한 오픈 액세스를 다른 지역으로 확산하는 것을 막고, 지역적으로 제한하려는 의도를 보여줍니다.

두번째 이슈는 오픈 액세스가 적용되는 저널들입니다. 엘스비어는 매년 네덜란드 대학교들이 무료로 오픈 액세스로 출판할 수 있는 저널의 수를 3년간 매년 133개씩 늘리겠다고 했습니다. 이는 엘스비어 전체 2천여개 이상 저널의 약 20%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해당 저널들은 이름이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임팩트 지수도 매우 약한 저널들뿐입니다. 그리고 이미 일부 저널들은 이미 논문을 오픈 액세스로 출판하고 있습니다.

오픈 액세스가 발전하려면 학술출판계에 실질적인 변화가 전세계적으로 일어나야 합니다. 그런데 기존의 출판사들은 오픈 액세스 요구에 지엽적으로 대응하면서 내심 오픈 액세스가 확산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또 다른 딜레마는 많은 연구자들이 오픈 액세스를 응원하면서도 저명한 유료 출판사의 저널에 자신의 논문이 실리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물론 엘스비어 같은 유료 출판사들은 이 점을 적극 활용하여 자신들의 입지를 방어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계속 새로운 저널을 만들어 내면서 자신들이 통제하는 생태계에 연구자들을 묶어 두려 합니다.

엘스비어가 보여준 태도에서 본 것처럼, 다른 획기적인 대안을 마련하지 않는 한 기존 출판사들을 오픈 액세스에 동참하게 하면서 확산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연구생태계의 전환이 기존 생태계의 지배권을 가진 측과 공존하면서 변화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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